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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vs.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될 수 있어요 (ft. 품위 있는 그녀 & 나는 4주만 일한다)

매일같이

by 어쩌다쨈 2022. 3. 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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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일요일 아침, 느슨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느슨해진 마음은 손가락도 느슨하게 합니다. 생각 없이 스크롤 하다가 무심코 눌러버린 유튜브로 아침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품위 있는 그녀'라는 드라마의 요약본 시리즈를 눌러버린 거지요. 웬만한 드라마를 보지 않는 저, ‘품위 있는 그녀' 제목은 들어봤지만 본 적은 없습니다. 왜 유튜브가 제게 이 짤을 추천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유야 어떠하건 무심코 보게 된 일명 드라마 짤, 거기에서 멈추는 게 정상인데 한 신에 꽂혀 버렸습니다.

(박복자) 다시 태어나면 난 화가가 될 거예요.

(우아진) 다시 태어날 필요까진 없는데. 지금이라도 배워요. 그럼 될 수 있어요, 화가.


이번 생은 망했어, 난 이미 글렀어 라는 말로 요약되는 우리 사회의, 아니 저의 위축된 마음에 봄날 얼었던 강물 깨지듯 큰 울림을 주는 대사였습니다. 그 이후 사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제 머릿속에서 대사가 울립니다.
다시 태어날 필요까진 없는데. 지금이라도 배워요. 그럼 될 수 있어요.’

물론 이 대사는 원하는 건 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는 상류층, ‘박복자’씨니까 말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메아리로 남는 건 나도 모르게 어차피 안될 거야 라는, 너무 현실에 젖어버린 제 자신에게 뼈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바라는 대로, 속된 말로 꿀리는 대로 살아오고 결정한 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은 어렵지 않겠어’라고 제 스스로 선을 그어 둔 한계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실패할까, 좌절하고 상처받을까 걱정되어 제가 잘 아는, 편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그린 그 경계, 안전 지역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가 정해버린 한계였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습니다. ‘다시 태어날 필요까진 없는데'라는 대사에, ‘지금이라도 배워요'라는 말이 가슴을 치고 머리를 흔듭니다.

때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나는 4시간만 일한다 (The 4-Hour Work Week)’입니다. 거의 15년 전에 출간된 책이죠. 몇 년 전에 읽고는 저 혼자서 별점 5점 만점에 2.5점을 주었던 흔하디흔한 자기 계발서라고 치워두었던 책입니다. 뜻하지 않게 북클럽에서 이 책이 지정되어 끌리지 않고 읽는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도 예의가 있으니까, 한번 후다닥 훑어보자는 냉소적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흠뻑 빠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내용이 바로 ‘지금이라도 배워요. 그럼 될 수 있어요.’, 이 대사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내용입니다. 살다 보니 이런 우연도 있습니다.

 

I deal with rejection by persisting, not by taking my business elsewhere. My maxim comes from Samuel Beckett, a personal hero of mine: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You won’t believe what you can accomplish by attempting the impossible with the courage to repeatedly fail better.

The 4-Hour Work Week

계속 시도하고 계속 실패해도 상관없다고, 다시 시도해서 다시 실패하라고, 다만 더 낫게 실패하라’는 글귀를 읽으며 실패가 무서워 안전하게 사는데 집중해온 저를 모난 돌멩이처럼 묵직하게 찌릅니다. 언제부터였던가요? 분명 저, 거리낌 없이 시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저는 넘어지지 않으려, 실패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멈춤 상태인 달리기도 그렇습니다. 한창 즐겁게 달리던 작년 11월, 달리다 넘어져 2주 정도 다리를 절룩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이때다 하며 날씨조차 나빠져 당분간 달리기를 잠깐 멈추자고 했던 게 벌써 3개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지난 주도, 지지난 주도 다시 달리자고 거리에 나서서 뛰기는 했습니다만 달리니 너무 좋아, 행복하다며 즐거워하는 대신 또 넘어질까 불안하고 걱정했습니다.

 

Life is too short to be small.

Benjamin Disraeli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은 80.5 살, 여성의 평균 수명은 86.5 살입니다. 그런 수치를 대할 때마다 앞으로 이만큼이나 더 살아야 하는데 갈수록 길어지는 노후기간, 미리부터 잘 준비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다는 문구를 읽자니 평균 수명은 말 그대로 평균 수치, 개개인이 얼마나 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닫습니다. 80살이 넘는 평균 수명의 데이터를 앞에 두고 아이러니하게도 안주하며 살기에는 우리 삶은 너무나 짧다는 걸 자각합니다.

 

짧아도, 길어도 내 소중한 삶, 안전하고 실패하지 않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자신을 미미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전제하며 살아온 저의 시간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 왜 오늘 나는 마음껏, 자유롭게 살지 않는 걸까, 대체 무얼 두려워하며 방구석에 주저앉아 핸드폰 화면만 보고 있는 걸까.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달려가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 중입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지만 좀 더 자유롭게, 걱정 없이, 마음껏, 온 힘과 에너지를 다해 전력으로 달려들자는 다짐만은 명확해집니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지요. 어쩌면 더 늦기 전에 드라마 짤을 보게 된 건 올해 최대의 행운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태어날 필요까진 없는데. 지금이라도 배워요. 그럼 될 수 있어요

이미 글렀다고, 이번 생은 틀렸다고 포기하고 있는 게 있나요? 오늘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세요. 정말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다시 태어날 필요까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배우고 시도하면 될 수 있습니다. 약간 늦어졌을 뿐입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우리들, 실패가 겁나서 주저앉기에는 우리의 시간이, 삶이 너무나 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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