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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의미 - 낭독, 회의, 독서 진도 모임, 토론 (ft. 합평회 후기)

매일같이

by 어쩌다쨈 2022. 3. 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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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제가 딱 그 모양입니다. 매일 쓰는 글은 차치하고 읽어야 할 책과 아티클에 외어야 할 구문들이 쌓이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참가하기로 한 모임조차 많습니다.


새벽에는 전쟁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서 매주 특정한 주제를 정해 온라인으로 토론했지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의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전쟁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는 요즘, 딱 맞는 주제입니다. 휴전 상태인 데다가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찌 보는지,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토론하였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전쟁이 나도 온라인으로 아이들 수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이야기하는 본인을 포함해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전쟁도 막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유쾌하게 토론을 마무리했지요.

오전에는 합평회가 없었습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했던 백일백장 챌린지, 백 일간 매일 글 한편 쓴 지도 60일이 지났습니다. 그간 썼던 글 중 한 편씩을 골라 함께 낭독하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입니다. 난생처음 참여하는 합평회, 문득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 ‘교사 없이 글쓰기 (writing without a teacher)’이 생각났습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의 글쓰기를 가르쳐왔던 저자는 역설적으로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교사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했지요. 대신 글을 쓰는 다른 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각자의 글을 낭독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늘 거라고 했습니다. 굳이 서로의 글에 대한 평을 할 필요도 없다고, 그저 나의 글을 소리 내어 읽고 다른 이의 글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글, 내게 맞는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거라는 조언이었지요.

각각 자신이 써 온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뿐인데 뭐가 다를까 싶었는데 지면 위에 잠들어 있던 단어가, 문장이 하나하나 깨어나 마음을 두드리는 이상한 시간이었습니다. 낭독을 들으며 웃기도, 울기도 하고 글을 읽다 흐느끼기도 하는 소리가 일깨우는 감정의 바다에 빠져드는 기묘한 체험. 차례가 되어 제 글을 읽어 내려가니 몇 번이고 읽고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이 귀로 들어옵니다. 내 글이 길구나, 산만하구나, 집중도가 떨어지는구나 하며 말이죠. 이래서 낭독회를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왜 이걸 이 좋은 걸 이제야 알았지, 하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또 하고 싶다는 욕심이 절반 그리고 내 목소리가 낯설어 당황스러움이 삼분의 일입니다. 나머지는 혼자서라도 낭독하고 녹음한 거 들며 연습하면 된다는 자각이었습니다. 결국 게으르고 귀찮아서 내 소중한 글이 더 자라지 않고 빛나지 못하고 있구나 싶습니다. 제 글에게 미안해집니다.

그리고 저녁때는 이번 한 달 이끌고 있는 독서모임과 관련된 회의 겸 확인 미팅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즐거워 함께 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휴먼 카인드 (Human Kind)’를 떠올립니다. 인간이 지구상의 우세종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더 힘이 세서, 똑똑해서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했지요. 이게 다 사회성이 높아서라고 저자는 주장했습니다. 좋은 생각은 배우고 서로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인류의 학습 능력이 월등히 높아져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게 요지입니다. 읽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설득됩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이 모든 모임이 바로 산 증거구나 싶습니다.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좋은 건 배우고 익혀가면서 모두가 함께 발전하는 모습,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나 봅니다.

사람들과의 만남, 매시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래, 나 기획하는 사람이지, 아직도 한 기획하는구나 하며 제 자신의 정체성을 새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피곤한 것도 사실입니다. 머릿속 생각을 빼내어 후련하면서도 에너지가 빼내어진 느낌이랄까요. 문득 요즘 유행하는 MBTI가 생각납니다.

MBTI에서 E와 I를 가늠 짓는 건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느냐입니다. 저는 얼추 중간치, 53 대 47 정도로 외향성 - E을 보인다고 합니다. 외향성과 내향성의 차이는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느냐는 것이지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으면 외향적인 사람이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게 더 많으면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확실히 중간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며 힘을 얻지만 오늘처럼 그 시간이 길어지면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거든요.

이럴 때 제게 필요한 게 바로 제 마음속, 머릿속 덜어낸 공간을 새로이 채우는 시간입니다. 밀린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시간 말입니다. 그러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미팅 시간을 줄여야겠구나 싶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난 3월, 내가 원하는 것은 무리하지 않기, 마음의 내실을 다져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날이 풀리고 햇살이 퍼질 때 저의 생각도 피우리라 생각합니다.

p.s. 오늘 합평회를 진행해 주신 #책과강연 팀에게 감사드립니다.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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